p.15 그냥 끄적이는게 좋았다. 쓸 게 있으면 그걸 쓰고, 쓸 게 없으면 책에서 찾은 인상 깊은 구절을 옮겨 적었다. 그렇게 자주 쓰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시를 쓰고 있었다. 시는 형편없었지만, 시를 쓰는 나는 근사했다. 눈에 띄는 것을 적느라 자주 길에 멈춰 서야만 했다. 알고 보니 시를 쓴다는 건 책의 문장을 베껴쓰는 일과 비슷했다. 그제야 나는 이 세계가 얼마나 정교한 곳인지 깨닫게 됐다. 나는 이 걸작의 세세한 부분을 제대로 베낄 수 없었다. p.17 요컨대 카프카에게 일기란 사전에 규정된 형식이 없는 글쓰기, 따라서 완벽하게 쓴다는 강박없이 쓸 수 있는 글쓰기였다. 사전에늘 일기를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라면 자신조차 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