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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완독 2 - 시대예보:핵 개인의 시대/송길영

huiyu 2024. 1. 8. 01:01

2 시대예보 / 핵개인의시대 - 송길영

p79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라는 범주가 매우 좁다는 걸 알게 된 사건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마음속으로 한국 출신의, 한국 국적의 대다수와 같은 외양을 지닌 사람만이 한국인이라고 규정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라도 다른 부분이 있으면 한국인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준이 엄격했던 이유는 무엇이든 한 가지로 통일해야 좋다 라는 획일과 효율의 강박이 한국인의 가치규범으로 자리 잡아 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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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욕망은 감춰야 했습니다. 이유는 '개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뭐가 중요해, '우리'가 중요하지."

p.161
이 모든 광경이 장님이 장님을 이끌고 간 결과입니다. 부모들은 먼저 살았다는 이유 때문에 아는 척해야 하는 책무에 놓여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나도 잘 몰라, 함께 고민하며 탐색해 보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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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제는 과거와 현재의 단서만으로 미래를 단정 지어 진로와 교육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와 다가올 미래를 제대로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그 변화에 맞추어 다음 세대의 기여를 고민해 보아야합니다.

p179
'인재는 영입하는 것이지 육성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흐름에 따라 리더의 역할 변화도 분명해집니다. 이제 작업 프로세스에 참여하지 않고 작업 분배와 공정 점검, 결과의 취합만 맡는 전업 관리 모델은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습니다. 작업 공정이 시스템에 의해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보일수록 '무임승차자'와 '군림하는 사람'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 리더에게는 더 깊은 통찰력과 더 높은 전문가적 자세가 요구됩니다. 핵개인들이 함께 일하는 동료의 전문성을 알아보는 안목을 키울수록, 훈수만 두고 결과물을 취하려는 구성원이나 '20년차 나이테'를 관록의 증거로 들이대는 관리자는 숨쉴 곳이 없습니다.

p180
수취화된 업적만으로는 존경을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그때그때 여건과 환경 변수는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것은 당신만의 서사입니다.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기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 맥락이 있다면 꽤 괜찮은 선배 직업인으로 마땅한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과거의 권세를 그리워하는 노회한 직장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p.217
소설 '가녀장의 시대'
이 소설의 백미는 그 관계성의 재정립입니다. 자립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일방적 지원은 부양자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계속된 지원을 받아도 그것을 당연시하는 부모는 자녀의 무력감을 양산합니다. 이 무력감에 대한 공포는 드라마 '더 글로리'  속 문동은의 어머니로 형상화되고,

p218
부모 세대는 '아이들을 키우고, 노인을 모시며' 본인 자립을 위햐 최소 자원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딸들은 이제 기존의 1차 방어선의 역할을 유지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의 기로에 섭니다.

p220
건전한 부모 자식 관계는 무리한 요구는 거절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무엇보다 거절당한 후 상처받지 않는 '상호 신뢰'와 '막연함' 또한 이러한 관계의 선행조건입니다.

p223
아버지와 어머니 양가 각각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생존하시면 한 명의 젊은이가 6명의 노인을 돌봐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20년 양육의 되갚음이 산술적으로는 누계  100년 이상의 돌봄으로 길어질터이니 효도란 다음 세대에게는 불공정한 거래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p 256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나이를 묻는 습성은 각자의 인생에 숙제와 강박을 남깁니다. '그 정도 나이면 이 정도는 하고 있어야지'가 일종의 메뉴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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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돈,나이'를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들었는데 그 만큼의 자산을 쌓지 못했다면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걱정하고, 그것으로 위축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강박에서 벗어날 시기입니다. 모두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불안하지만 미래가 있는 것이고, 노년은 회한이 있지만 안정된 것입니다. 생활의 여유는 얻었지만 유한한 생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삶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겹눈을 가지면 어떨까합니다.

p263
각자의 삶의 중심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부양의 의무는 '내가 해야 할 일'중에 하나일 뿐이지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p276
"아버지가 정년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결혼 해야해"
...
옛말에 이르기를, 남녀 각각의 가족들은 혼인을 할  때에 각 집안의 덕망을 보았을 뿐, 재물을 주고받는 것을 예법으로 여기지 않았다"

p278
그 결과로 자녀의 결혼에 너무 많은 자원을 소모해버린 부모들은 노후가 불안해집니다. 이 때문에 장성한 자식이 다시 부모를 부양하는 '효도'라는 '시간차 되갚음'의 시스템이 설계된 것입니다.
이것이 누군가에겐 합리적인 아름다운 협력 시스템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 각자의 부모님들에 대한 부양까지 섞이면 그 분배의 형평과 공정 문제가 또 수면으로 떠오르게됩니다. 그 사이 주택비용이 수직상승한 것은 더욱 큰 걸림돌입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주거비가 청년들의 결혼 의지를 아예 꺾어버리는 일까지 나타났습니다.

...
만남의 횟수가 줄면 관계도 옅어집니다. 친족 중심의 전통적 사회에서는 그 영원할 것 같았던 '핏줄'  이라는 관게조차 상호 노력으로 이어가야만 결속이 된 것입니다.

p286
성장과 좌절이 진실하게 누적된 나의 기록은 유일무이한 나만의 서사입니다. 나무의 나이테가 그러하듯 서사는 결코 급조될 수 없습니다. 오직 시간과 진정성으로 만들어집니다.

p.297
그 다음에 오는 것은 산의 정상에 오른 뒤에야 산의 높이를 나타내는 숫자가 목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인정의 정점에는 나 자신으로부터의 인정이 있습니다.
이 시점에 이르면 밖으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행하는 것이 결국 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최고'라는 상댓값이 아니라, 가장 앞에 선 자가 맛보는 '최선'이라는 절댓값입니다.

p.322
점점 '쿨한 안녕'이 많아집니다. 있을 땐 위계 없이, 떠날 땐 원한 없이, 회자정리 거자필반입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떠났다 돌아옵니다. 서로는 소중한 손님이며 지금 함께 있는 조직은 거대한 우주 속 환승 정류장과 같습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각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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