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관계, 태도, 습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 책.
20p
총명한 사람은 온전히 홀로 있을 때조차 자신만의 생각과 상상만으로 큰 즐거움을 얻는다. 반면에 아둔한 자는 아무리 사교 활동, 연극, 유흥거리를 즐겨도 고통스러운 권태로움을 피할 도리가 없다. 선하고 절제하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는 환경이 곤궁해도 만족을 찾는다. 하지만 탐욕스럽고 남을 시기하는 악한 사람은 아무리 부자여도 만족을 모른다. 하지만 비범하고 뛰어난 정신을 지닌 인격을 추구하는 자는 대다수 사람이 좇는 향락을 번거롭고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p24
그런데도 인간은 재산을 축적하는 데에 치중한 나머지 지적인 교양을 쌓는 일에는 뒷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부자로 태어났지만, 내면이 가난하면 외부에서 뭐든 받아들여 내면의 부를 외적인 부로 대신하려고 하는데, 그 노력은 부질없다.
p58
반면에 평범한 인간은 특히 인생의 향락에 관해서는 자기 외부에 있는 것, 즉 재산, 지위, 부인과 자식, 친구, 사교 모임 등에 기댄다. 이것들이 자기 인생의 행복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외부의 것을 잃거나 그것들에 기만당했다고 느끼면 절망한다. 이런 관계에서는 무게 중심이 인간의 외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것을 바라고 변덕스럽게 군다. 재력만 있다면 별장과 말을 사고, 파티를 열고, 여행을 떠나는 등 엄청난 사치를 부리는 이유는 외부에서 만족을 찾기 때문이다. 자신의 참된 원천은 본인의 활력에 달려있는데 쇠약한 자가 콩소메 수프와 약의 힘을 빌려 건강과 힘을 되찾으려는 것과 같다.
p71
셋째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구는 사치, 호화,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이다. 이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고 충족시키기도 매우 어렵다.
p.74
현재 가진 재산을 뜻하지 않은 재난과 사고에 대비한 보호막으로, 또 세상의 쾌락을 즐기는 데 필요한 허가라든가 즐길 자격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기 자신의 재능만으로 많은 돈을 번 사람은 자기가 가진 재능이 고정 자본이고 재능으로 일군 이득은 이자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그는 소득을 조금씩 남겨 고정 자본을 불려나가지 않고 버는 족족 소비해 버리고는 재능이 바닥나 소득이 없어지는 바람에 빈곤에 허덕인다.
p 76
일반적으로 빈곤과 결핍과 처절하게 싸워본 사람은 풍문으로만 그에 대해 들어본 사람과 달리 빈곤과 결핍을 두려워하지 않고 돈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중 어떤 행운이나 특별한 재능이 뒤따라서 빠르게 가난에서 벗어나 재산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과 반대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모자람 없이 자라온 사람들도 있다. 후자는 보통 미래 지향적이므로 경제적 능력이 전자보다 뛰어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본래 부자로 태어난 사람에게 돈은 없어서 안 될, 생명과 직결되는 요소인 공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p.82
"집안이 불우하여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출세가 힘들다"
이 말은 세상 사람들보다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더 적합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의 소유물에 아내와 자녀를 포함하지 않았다. 사실 아내와 자식의 소유물이 그 개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친구를 소유물의 개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친구를 소유하는 사람은 그 자신 역시 친구의 소유물이 된다.
p84
나 자신의 가치와 외부 평가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p85
인간의 본성은 특별히 나약하게 타고나므로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을 과도하게 의식하곤 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이 우리의 행복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인간이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생각을 알아차리고 자기 허영심이 충족될 때 몹시 기뻐하는 그 속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쓰다듬으면 자동으로 가르랑대는 고양이처럼 인간은 자기가 자신있는 분야에서 입에 발린 거짓말 같은 칭찬이라도 받으면 대번에 얼굴색이 환해진다. 실제로 불행한 인간이거나 지금까지 언급한 행복의 두 가지 주요 원천이 빈약해도 칭찬에 위안을 받는다.
p.87
이런 타인의 태도 자체도 사실 인간이 자기 내면에서 자기 자신에게 비치는 생각에 영향을 끼칠 때만 관련이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과 무관하며 실제로도 점점 무관심해질 것이다. 개념이 편협한지, 신조가 옹졸한지, 견해가 잘못되었는지 자신이 깨닫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이런 잘못된 착각으로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멸시의 언어를 내뱉는지 배운다면 그런 언행이 알려질 걱정 없이 타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특히 멍청한 자가 위대한 인물을 헐뜯는 소리를 들어도 태연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과도할 정도로 존경을 표하는 일도 이해할 것이다.
p.158
'어리석은 자와 말하는 것은 잠자는 사람과 대화하는것과 같다. 얘기가 끝나면 어리석은 자는 "그래서 무슨 말을 했는데?"라고 묻는다.' 그리고 햄릿은 '장난기 많은 말도 바보의 귀에서는 잠들어 버린다."라고 말했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듣는 이의 귀가 비뚤어져 있으면 가장 행복한 말도 조롱당한다'
또한 이런 말도 했다.
'너는 신경쓰지 마라. 모든 것에 둔감한 반응을 보이니. 좋은 기분을 잃지 마라! 늪에 던진 돌은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다.'
p180.
'현명한 자는 즐거운 것을 추구하지 않고 고통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
인간은 전신이 건강한데 몸 한 곳에 상처를 입었거나 그 밖에 아픈 곳이 있으면 전신의 건강은 의식에 들어오지 않고, 다친 곳의 고통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며 생명력이 주는 만족이 상쇄되어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도 자기 의도에 어긋냐 단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머리에 맴돈다.인간은 그러ㆍ 것을 자두 생각하는 반면에 뜻대로 진행되는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p181.
'행복은 꿈일 뿐이고 고통은 현실이다.'
행복론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인생의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누린 기쁨을 계산하지 말고, 그가 잘 피한 악을 따져야 한다.
'행복하게 산다'의 의미는 본래 단지 '덜 불행하게' 즉 참고 견디며 살아가라는 교훈이다.
p182
라틴어로는 '삶을 영위하고, 삶을 완수하다.' 이탈리어는 '그럭저럭 헤쳐나가다', 독일어로는 '반드시 헤쳐나가야 한다' 또는 '그는 어떻게든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이다'로 표현한다. 노년에 위로가 되는 사실 하나는 인생의 여러 가지 일을 모두 끝마쳤단 점이다.
그러므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고통 없이 인생을 보내는 사람이지 활기 넘치는 기쁨이나 최고의 향락을 맛본 사람이 아니다. 활기 넘치는 기쁨이나 최고의 향락을 인생의 행복을 가늠하는 잣대로 삼으려는 사람은 잘못된 기준을 택했다. 그 이유는 향락은 언제나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고, 향락으로 행복해진다는 말은 시기심이 자기 자신을 벌하려고 품는 망상이기 때문이다.
p186
반면에 고뇌와 고통은 현실로 다가와 그 실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착각이나 기대가 소용없음을 알게 한다. 결국 이 가르침이 열매를 맺으면 인간은 히닝복과 향락을 쫓길 멈추고, 되도록 고통과 고뇌의 접근을 막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이 고통없이 조용하고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요구를 이런 생활에 부합하도록 조절하며 세상이 제공하는 삶을 확실하게 살아가게 된다.
너무 불행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은 자신에게 아주 행복해지라고 요구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만큼의 행복을 얻으려는 역겨운 욕망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망친다. 자기 앞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이 욕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p.188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어떤 일이나 조건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일에 실패했다고 크게 한탄하지도 않는다. 대신 플라톤의 '인간의 일은 무엇이건 간에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없다.' 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세상의 소유물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아무것도 아니니.
세상 전부를 다 가졌다 해도
기뻐하지 마라, 아무것도 아니니.
고통도 희열도 이 세상에 그저 지나가니
세상을 지나쳐라, 아무것도 아니니.
안와리 '소헤이리'
p193
'왜 영원하지도 않은 것에 정신을 피로하게 만드는가?'
인생을 출발점에서 보면 끝이 없어 보이지만, 종점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면 아주 짧다. 하지만 착각 없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물론 이런 착각에는 좋은 점도 있다.
p202
모든 삶의 범위에 제한을 두면 행복해진다. 인간의 시야, 활동이나 접촉 범위가 좁을수록 인간은 더 행복해지고, 범위가 넓어질수록 더 자주 괴롭거나 두려워진다. 범위가 넓어지면 걱정, 욕망, 끔찍한 일도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지루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계를 최대한 단순하게, 나아가 획일적으로 만드는 습관을 들이면 행복해진다. 그래야 인생 자체는 물론이고 인생에 따르는 부담이 가장 적게 줄어든다. 이런 인생은 파도와 소용돌이 없이 시냇물처럼 흘러간다.
p.204
완벽하게 사려 깊은 생활을 하고 그 안에 포함된 모든 가르침을 자신의 경험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험하고, 행하고 느꼈던 것을 자주 회상하며 개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판단을 비교하고, 자신의 의도와 열망을 결과물과 그 결과에 대한 만족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
낮 동안 한 일을 자기 전에 복습해야 한다는 피타고라스의 원칙도 앞의 권고를 염두에 둔 행동이다. 이런저런 일이나 유흥에 빠져 사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지 않고 인생을 항상 정신없이 보낸다. 이런 자는 명석함을 잃고 마음이 혼란스러우며 생각이 복잡하다. 그의 말은 두서없고 불완전하고 대화가 뚝뚝 끊기며 이어지지 않는다. 외적인 불안과 외부에서 받는 느낌이 커지고 정신의 내적인 활동이 줄어들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p.207
우선 모든 사교 모임에는 상호 간에 조정과 타협이 필요한데, 모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분위기는 무미건조해진다. 인간이 자신의 본래 모습 그대로 있을 때는 홀로 있을 때뿐이다. 따라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에만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교와 강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며 모임에서 각자의 개성이 강할수록 희생하기 더 힘들다.
p.210
객관적 또는 주관적 조건 탓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필요가 적을수록 인간의 형편은 나아진다. 외로움과 단조로움 속에 사는 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재앙을 느끼진 못해도 한눈에 내다볼 수는 있다. 반면엧사교계는 은밀하다. 사교계는 겉으로는 심심풀이 유흥, 담소, 사교적 향락의 모습은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대개 구제 불능의 재앙을 숨기고 있다. 청년이 주된 인생의 과제로 배워야 하는 부분은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다. 외로움이야말로 행복과 내면의 평정을 가져오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실로 미루어보아 자신에게만 의존하고 모든 면에서 자신이 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심지어 키케로도 디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자신에게만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게다가 스스로 소유한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가치는 적어진다.
p211
풍부한 내면의 가치를 지닌 사람은 확실히 만족감을 느끼므로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는 데 필요한 중대한 희생을 치르거나 명백하게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공동체를 이루려 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의 사례는 평범한 인간의 경우인데 이들은 매우 사교적이고 순응적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견디는 게 더 쉽다. 세상에서는 진짜 가치 있는 것이 존중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존중받는 것은 가치가 없다. 존경받는 사람이나 탁월한 인재가 은둔을 택하는 사실이 이에 대한 증명이자 결론이다.
p212.
인간을 사교적으로 만드는 요인은 인간이 외로움과 외로운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을 사교 모임, 외국, 여행으로 몰아가는 주체는 내면의 공허함과 권태감이다. 이런 인간의 정신에는 스스로 움직일만한 원동력이 없다. 그래서 그는 포도주라도 마시면서 기운을 끌어올리려다가 그냥 술고래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는 외부로부터 자극, 자신과 같은 부류에서 오는 매우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다. 이 자극이 없으면 그의 정신은 자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을 짓누르는 무기력증에 빠진다.
p.214
사교 모임을 즐기는 자는 자기 주변인들의 질이 떨어지면 양으로 어느 정도 보완해야 한다는 원리를 따르게 된다. 그가 정신이 풍부한 사람을 단 한 명만 사귀어도 충분하지만, 주변에 평범한 사람들밖에 없다면 다양성과 협력을 통해 뭔가를 이뤄야 한다.
p273
그래서 나는 어디에서든 어떤 허세라도 부리지 말라고 경고하겠다. 허세는 항상 경멸당하는 느낌이 든다. 일단 허세 자체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속임수이므로 비겁하다. 둘째로 허세는 자기 실제 모습이 아닌 남에게 더 낫게 보이길 바라는 모습을 조작해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여 본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는 꼴이다. 어떤 개성을 지닌 듯 뻐기는 일은 자신이 그 개성을 지니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거나 다름없다.
누군가 용기든 박식함이든 뛰어난 정신이든 재치든 여복이든 부유함이든 고귀한 지위든 그밖에 어떤 것이든 과시하는 행동을 보이면 바로 거기에 그 사람의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정말로 어떤 개성을 온전히 지닌 사람이라면 그 개성을 드러내거나 과시하지 않고 묵묵히 만족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온 스페인 속담이 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편자에는 못이 하나 빠져있다'
내가 처음부터 말했듯이 누구도 방심하여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선 안 된다. 인간의 악하고 잔혹한 본성에는 위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아무도 가짜를 오랫동안 참을 수 없다. 날조된 것은 빠르게 본성으로 돌아간다'
p288
누군가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이 들면 일단 믿는 척해라. 그러면 상대는 대담해져 더 심한 거짓말을 하다가 결국 거짓을 폭로당한다. 반대로 상대가 숨기고 싶은 진실 일부가 그에게서 누설되었다면 그것을 불신하는 시늉을 하라. 그러면 상대는 나의 반박에 자극을 받아 모든 진실을 하나씩 털어놓을 것이다.
p288
사적인 일은 비밀로 하고, 친한 지인이라 해도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일 이외에는 완전히 모르는 채로 남겨 두어라.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라도 남에 관한 지식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인간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보다는 침묵하는 편이 자신의 지성을 드러내기에 좋다. 침묵은 신중함의 문제이고 말은 허영심의 문제다. 하지만 인간은 종종 침묵이 주는 지속적 이익보다 말이 주는 일시적인 만족감을 선호할 때가 있다. 어쩌다 한번 혼잣말로 크게 외치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활기찬 사람에게는 있을 법한 일이지만 습관이 되지 않도록 자제하는 편이 낫다. 버릇처럼 혼잣말하다 보면 사상과 말이 친숙해져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점차 생각이 말로 튀어나올 수 있다. 생각과 말 사이에 넓은 틈을 벌려두어야 현명하다.
p290
남에게 속아서 쓴 돈보다 유익하게 사용한 돈은 없다. 인간은 그 일을 겪고서 직접적인 현명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p293
옛말에 세상을 지배하는 힘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바로 현명함, 힘, 운이다. 나는 이 중에 운이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애는 배의 항로에 비유할 수 있다. 운명, 즉 행운이나 불행은 바람의 역할을 해서 인간을 빠르게 멀리 보내거나 저 멀리 뒤쪽으로 되돌려 버리기도 한다. 여기서 개인의 수고나 노력은 별 소용이 없다. 인간의 노력은 사실상 노의 구실을 한다. 오랜 시간 노를 저어 앞으로 나가면 갑자기 돌풍이 불어 인간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순풍이 불면 노가 필요없을 정도로 나아갈 수 있다. 스페인 속담은 이런 운의 힘을 독특하게 표현한다. '당신의 아들에게 행운을 주고 그를 바다에 던져버려라'
p294
인간은 자기가 내리는 결정을 앞서 예언하지 못하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은 더더욱 예측할 수 없다. 결정과 사건중에서 인간이 아는 부분은 현재의 결정과 사건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직 목표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가지 못한다. 그 대신에 대략 추측해서 방향만 잡을 수 있기에 종종 돛을 반대로 돌려야 할 때가 있다.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항상 순간의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주요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결정이란 희망을 품는 것뿐이다.
p295
인생은 체스와 같다. 인간은 계획을 세운다. 체스에서 이 계획은 상대가 어떤 수를 쓸지, 인생에서는 운명이 어떤식으로 나올지에 따라 계획에 제약이 생긴다. 이때 계획은 수정을 많이 감수해야 하므로 실제로 실행할 때는 몇 가지 개요 정도만 겨우 식별할 수 있다.
p.298
오직 변화만이 영원할 뿐이다. 현명한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견고함에 속지 않고 다음 변화가 일어날 방향을 예견한다. 이에 반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물의 일시적인 상태나 진행 방향을 영구적이라고 생각하늕이유는 자기의 눈에 결과는 보이지만, 미래의 변화를 일으킨 싹이 된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싹은 원인에 있고 결과는 원인 때문에 존재하므로 결과에는 미래에 변화를 일으키는 싹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p.301
닥칠지 모를 불행을 차단하려면 노력, 시간, 불편함, 번거로운 절차, 돈이나 궁핍 등 무언가를 지부하는 일을 꺼려선 안 된다. 이렇게 방지한 불행이 클수록 노력, 시간, 불편함 등은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질 것이다. 이 원칙의 가장 명확한 예시는 보험금이다. 보험금은 모든 사람이 악마의 제댜에 바치는 공공연한 제물이다.
p302
어떤 일 앞에서도 크게 환호하거나 너무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가변성이 있으므로 언제든지 헝세가 바뀔 수 있다.
'나는 이미 갑작스러운 기쁨과 슬픔을 너무 많이 느껴서 이제 어떤 일을 맞이한다 해도 어느 쪽에도 유약하게 끌려가지 않는다.' -셰익스피어 '끝이좋으면 다 좋다'
p.305
순간마다 인간을 괴롭히는 사소한 사고는 행복함에 젖어 너무 해이해지지 않도록 큰 재난을 견뎌내는 힘을 반복해서 훈련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일상의 번거로운 일이나 인간관계의 사소한 마찰, 하찮은 충동, 타인의 무례함, 험담 등에 대해 불사신 지크프리트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즉 어떤 일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거나 마음에 담아두고 내내 곱씹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중 어떤 것도 내면에 다가오지 않게 하여 길 위에 가로놓인 돌멩이처럼 치워버려야 한다. 절대 어떤 일을 자꾸 숙고하고 되새기면서 내면화하지 말아야한다.
p.313
인간은 평생 현재만을 살고 절대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같은 현재라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처음에는 인간앞에 먼 미래가 보이지만, 끝에 다다르면 먼 과거가 뒤에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기질은 이미 잘 알려진 몇 가지 변화를 거치면서 그때마다 현실에서 다른 색을 만들어낸다,
p 322
젊을 때는 인간의 생애에서 중요하고 중대한 사건이나 사람들이 자기 앞에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나타날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회상해보면 그런 사건과 사람들이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뒷문으로 살그머니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인생은 수놓은 천에 비유할 수 있다. 인생의 전반기에는 자수가 수놓인 앞면만 보지만, 인생 후반기에는 그 뒷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뒷면은 앞면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배울점이 많다. 여러가지 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p325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려면 인간은 나이가 들어봐야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일은 하잘것없이 보인다. 젊을 때는 확고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던 삶이 이제는 재빠르게 사라져버려 헛된 현상으로 나타난다. 모든 것이 덧없는 걸로 드러난다.
p.343
노년기의 주요욕구는 안락함과 안정이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전보다 더 돈을 사랑한다. 돈이 잃어버린 능력의 대체재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에게 쫓겨났으니 술의 신 바쿠스에게 기대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고 싶을 것이다. 보고 여행하고 배우려는 욕구 대신 가르치고 말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백발노인이 여전히 학구열이 넘치고 음악이든 연극이든 무엇이건 간에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려는 감수성이 남아있다면 그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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