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독서

2024 완독 12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huiyu 2024. 5. 11. 17:40


p17.
쇼펜하우어의 인생은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풀리기 시작했다. 쇼펜하우어에게 마흔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인내하면서 넘어야 할 인생의 위기이자 전환점이었다. 그가 40대에 포기했다면 명성도, 행복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p24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두 가지 적수가 고통과 무료함인데, 우리의 인생이란 이 두 가지 사이를 오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적으로는 궁핍과 결핍이 고통을 낳는 반면 안전과 과잉은 무료함을 낳는다. 따라서 하층 계급 사람들은 궁핍의 고통과 끊임없이 싸우는 반면 부유하고 고상한 세계의 사람들은 무료함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

행복과 불행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달려 있다. 없으면 없다고 불평불만하고 많으면 많다고 지겨워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결핍은 고통이고 과잉은 무료함이다. 인간에게는 배고픔도 고통이지만 포만감 또한 불쾌다.

p25
뇌가 집중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반면 휴식할 때 불행하게 느낀다고 발표했다.

길버트 팀의 연구 결과, 열심히 일에 집중할 때, 운동할 때, 마음이 맞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높은 수치의 행복 호르몬이 나왔다. 반면 휴식을 취하거나 부정적인 생각, 미래에 대한 걱정, 불쾌한 경험을 기억할 때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다. 이 연구 결과는 이 세계의 본질이 끊임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의지이며, 의욕과 노력은 동물과 인간 전체의 본질이기 때문에 권태가 불행의 원인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p30
현명한 사람은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지 않고 자신의 안에서 찾는다. 자신의 고뇌를 객관적인 조건 탓으로 돌리지 않고 고뇌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무료함의 근원인 내면의 공허를 극복하기 위해 외적인 자극 대신 내적인 풍부함을 추구한다.


p43
현자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

이처럼 쾌락보다 고통의 지속도와 강도가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쾌락을 추구하기보다는 고통을 줄이는 데 힘쓸 필요가 있다. 환상과 같은 향락을 좇지 말고 결핍, 질병, 위험 등 현실의 고통의 원인을 먼저 없애야 된다.

p56
교육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본성을 바꾸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된다. 이처럼 누구나 타고난 욕망과 능력이 무엇인지 오랜 성찰을 통해 찾아낸 다음, 그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된다.

p61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의 행복이나 불행과 관련한 모든 일에 대한 상상력을 억제해야 한다. 지나친 상상력과 추측, 기억은 불행의 씨앗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해 행복을 미래에 두지 말고, 과거의 고통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p65
과거의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에 행복을 미루지 마라.

p76
“우리 인생의 장면들은 거친 모자이크와 같다. 가까이서 보면 제대로 알아볼 수 없고 멀리서 봐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p79
인간의 행복은 대부분 건강에 의존한다. 건강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다른 어떤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없다. 몸이 일단 건강해야 기분도 좋고 웬만한 어려움을 잘 견딜 수 있다.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려면 오래 살아 봐야 한다.”

p82
그러나 꾸준한 운동이라는 노력으로 명랑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심장과 혈관, 근육을 튼튼하게 하면 우울한 기질의 사람도 어느 정도 쾌활하게 살 수 있다.
40대부터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웃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무엇보다 운동을 통해 건강을 챙겨야 된다.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왕’이 아니라 ‘거지’라도 웃을 수 있는 명랑함에서 단번에 볼 수 있다. 항상 긍정적인 기분으로 살면서 늘 웃는 얼굴을 가져야 할 것이다.

p85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은 사람과의 불필요한 교제를 줄이는 것이다. 대화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질투심을 갖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다.

p88
알찬 속보다 가짜의 겉모습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행복도 그런 바깥에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행복은 그런 화려한 겉모습에 있지 않다. 행복은 학교에서 지식처럼 배울 수 없고 종교 단체에서 경건하게 체험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행복한 사람을 대충이라도 알아보려면 즐거움보다 슬픔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행복의 알맹이를 알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즐거워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일에서 고통을 느끼는지를 확인해 봐야 한다.”

p90
주변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울 때
더 좋은 것이 찾아온다.

p108
책으로 그 사람이 걸어간 길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길을 걸으며 무엇을 봤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눈으로 봐야 한다.

p109
글쓰기는 자신의 사유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글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글로써 내용뿐만 아니라 문체도 간결함과 명료함을 갖춰야 된다. 글쓰기를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쓰는 것이다. 마치 가발처럼 남의 생각을 잔뜩 집어넣고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박식함을 과시하는 태도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애매하고 어렵고 추상적인 글쓰기를 경계하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제안한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글쓰기의 중요한 덕목이다.

p159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돼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이나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작은 만족에서 얻는다. 짧은 행복은 작을 수밖에 없다.

p164
감각이 무딘 동물이 현재에만 몰입하기 때문에 행복한 반면, 상상력으로 만든 미래의 환영에 갇혀 사는 인간은 불행하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희망은 행복의 바탕인 마음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 과거와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만 충실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미래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으로 급히 쫓아가는 반면에 현재는 거들떠보지도 즐기지도 않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만이 진실하고 현실적이고 확실한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p165
과거는 지나가서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는 것인데,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 속에서 사는 것은 어리석다. 현재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1년 이상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다 보니 미래에 무한한 시간이 펼쳐질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다시 새겨 보면 좋겠다.

현재를 과거처럼, 현재를 미래처럼 의식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더 가치 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p167
워크홀릭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 마흔이면 일과 행복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회의와 절망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사회 집단과 관계에 맞춰 사는 것이 익숙한 40대는 눈치를 많이 보는 세대다. 남의 시선에 갇혀 살면 행복해질 수 없다. 타인의 평가에는 시샘, 질투 등 부정적인 내용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타인의 평가의 틀을 과감히 깰 필요가 있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릴 때 떠올려 보라.
 
“너라고 나보다 나을 게 없다!” -


p173
플라톤은 《행복론》에서 재산, 외모, 명예, 체력, 언변에서 조금은 “부족함을 느끼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보다 자신의 주관적인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보다 다소 부족하다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p181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흔히 타인의 평가는 직장에서, 사업에서, 만남에서 객관적인 조건이 된다. 하지만 참된 행복의 조건을 안에서 찾아야 한다면 타인의 평가는 어쩌면 행복과는 무관할 수 있다.

p186
“우리 인생의 첫 40년은 본문이고, 그다음 30년은  그 본문에 대한 주석이다.”

p189
쇼펜하우어는 40대를 인생의 큰 분기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40대 이후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에 대해 나름의 색깔을 더하는 해석의 과정이다.

100년을 산다고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이는 ‘무상’하다고 한탄하지만 어떤 이는 ‘소풍’처럼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도 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이 그 삶의 전부다.

p190
운명은 나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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