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느끼게 - 박완서
p39
여관이나 호텔은 좀 불친절해도 잘 참는 편인데도 친척이나 자식이 나를 위해 이것저것 신경을 써 준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편안치가 못해서 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다. 자주 전화 연락을 하던 지방에 사는 친지한테도 막상 그 고장에 볼일이 생겨 갔을 때는 연락을 안 하고 여관에 묵고 살짝 돌아온다. 혹시나 재워 줄 의무를 느끼거나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어 할까 봐 그렇게 하는데도 나중에 알면 섭섭해하고 차가운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편하자고 그러는 것이니까 욕을 먹어도 할 말은 없다. 천성적으로 누가 나한테 너무 잘해 주려고 하면 나는 그게 가시방석처럼 불편한 걸 어쩌랴.
p45
예전부터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들이 그 애를 잃고 나자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된 것도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낯섦이어서 남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 불편할 적이 많다.
p63
광주에서 해남까지의 장거리 직행버스도 못 타고 수도 없이 정거하는 시외버스를 타게 됐다. 그러나 그동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금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어디를 가기로 정하면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을 강구하고 가면서 통과하게 되는 고속도로나 국도변의 풍경은 가능한 한 빨리 스치는 게 수였다. 공업화·산업화·관광지화를 꿈꾸거나 이미 이룩한 지방들은 자연도 인심도 도시의 변두리일 뿐 순전한 시골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p96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건 기독교 정신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이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란 바로, 참으로 그리고 골고루 민주적인 사고와 생활 방법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이제 겉모양이 드높고 내부 장치가 으리으리한 고층 건물만 가지고 근대화를 뽐낼 게 아니라 그 속에 근대적인 정신을 담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p98
어떤 자리에서나 극단적인 편견에 치우친 말일수록 목청이 높다. 극단적인 편견이란 남의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걸 나타내는 목소리까지도 우선 배타적이다. 남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배제하려면 제 목청을 높일 수밖에 없다. 남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으면 그건 이미 극단적인 편견이 아니다. 극단적인 편견이 때로는 옳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게 혐오감을 주는 이유는 바로 그 폐쇄성 때문에 그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p99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 중에서 이 속담만은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똥을 피하는 건 더러워서일 뿐 무서워서가 아니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변명은 될지 몰라도 여럿이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 대해선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너도나도 똥을 피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똥통이 되어 버릴 것이 아닌가. 똥은 피할 게 아니라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 게 수다.
인간답게 사는 길도 나만 인간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인간답지 못하다. 이웃이 까닭 없이 인간다움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나만은 오래오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어리석음이다.
p103
법 대신 편법을, 원칙 대신 변칙으로 사는 걸 은연중 권장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된 사회다. 마찬가지로 특혜나 특사가 자주 있어야 하는 사회도 인간다움이 그만큼 자주 짓밟힌 사회라는 혐의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인권만은 특혜로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p111
나는 노인의 옹기 빛 살갗과, 골 깊은 주름과, 비틀린 것처럼 처참한 목고개를 지켜보면서, 저 노인에게도 풍악 소리에 신명을 못 이겨 고향과 부모의 기대를 등진 꽃다운 젊은 날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고 하염없어졌다.
p113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슬퍼진다. 외롭거나 불쌍한 노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도 늙어가고 있고 곧 노인 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걸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자주 의식하게 되고부터인 것 같다.
노인을 보면 슬퍼지고부터는 사진 찍기가 싫다. 공개되어야 할 사진을 찍기는 더욱 싫다. 두렵기조차 하다.
p117
어머니가 내 집에 오셔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계신 걸 보는 것은 슬프다. 어머니가 보고 계신 건 창밖의 풍경일까? 당신의 지난날 일일까?
창밖의 풍경도 지난날도 하염없이 흐르고 차디찬 죽음의 예감이 우울하게 서린 어머니의 노안(老眼)은 크나큰 비애다.
그래서 그런 일시적이고도 물량적인 효도를 받으실 때의 어머니는 차라리 더 쓸쓸하다. 어머니가 정말 행복해 보일 적은 무릎으로 엉겨드는 증손자를 어루만지실 때다.
생명이 소멸돼 갈 때일수록 막 움튼 생명과 아름답게 어울린다는 건 무슨 조화일까? 생명은 덧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이어진다고 믿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p129.
마라톤의 선두 주자! 생각만 해도 우울하게 죽어 있던 내 온몸의 세포가 진저리를 치면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선두 주자를 꼭 보고 싶었다. 아니 꼭 봐야만 했다.
나는 차비를 내고 내려 달라고 했다. 안내양이 정류장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한 김에 어느 틈에 안내양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정류장이 아니기 때문에 못 내려 주겠다구? 그럼 정류장도 아닌데 왜 섰니? 응 왜 섰어?”
“이 아주머니가, 정말……”
안내양은 나를 험상궂게 째려보더니 획 돌아서서 바깥을 내다보며 상대도 안 했다.
그래도 나는 선두로 달려오는 마라토너를 보고 싶다는 갈망을 단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짐짓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안내양의 어깨를 쳤다.
“아가씨, 내가 화장실이 급해서 그러니 잠깐만 문을 열어 줘요, 응.”
“아주머니도 진작 그러시지, 신경질 먼저 부리면 어떡해요.”
안내양은 마음씨 좋은 여자였다. 문을 빠끔히 열고 먼저 자기 고개를 내밀어 이쪽저쪽을 휘휘 살피더니 재빨리 내 등을 길바닥으로 떠다밀어 주었다.
p132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p133
그러나 그날 내가 20등, 30등에서 꼴찌 주자에게까지 보낸 열심스러운 박수갈채는 몇 년 전 박신자 선수한테 보낸 환호만큼이나 신나는 것이었고, 더 깊이 감동스러운 것이었고, 더 육친애적인 것이었고, 전혀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이었다.
p163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들이 그들의 예지로 그들을 억누르고 있는 허깨비의 정체를 규명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능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p164
그리고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p166
유행이란 어차피 길이가 있는 건 길어졌다 짧아졌다, 폭이 있는 건 넓어졌다 좁아졌다, 그 테두리 안에서 변하고 반복되는 게 아닐까. 우린 수없이 그런 반복을 보며 살아왔기 때문에 명동에 나가 제아무리 기이한 의상을 봐도 별로 놀라지지 않는다.
p168
사람들은 몇천 년을 두고 늙은이는 젊은이 하는 짓에 “말세로 다 말세로다” 한탄을 하는 짓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도 말세는 안 왔고 젊은이들에 의해 역사는 발전해 왔지 않은가
p169
사람에겐 머리터럭 말고도 소중하게 지킬 게 얼마든지 있다는 태도는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이제 이런 젊은이들에게 머리털을 그들의 것일 수 있도록 돌려줬으면.
공부에 열중하느라, 연애에 정신이 팔려서, 이발료를 아끼려고, 멋있으려고, 머리터럭쯤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었기로서니 거리를 활보하는 데 지장을 주어서야 되겠는가.
p174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런 새로운 풍습은 벼락부자들 사회에서 비롯된 악습이 아닌가 싶다. 벼락부자들이란 부(富)에 자신이 있는 것만큼 내면은 허(虛)하게 마련이고, 여기서 비롯된 열등감의 발로가 그런 철없는 물량 공세로 나타난 것 같다. 또 벼락부자층과 권력층과의 정략결혼에서도 벼락부자가 과시할 수 있는 건 돈의 힘밖에 없으니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p195
이런 의미로도 나는 지독한 부자와 지독한 가난에 대해 비슷한 혐오감과 공포감마저 느낀다. 자식들은 그저 부자도 아니고 가난뱅이도 아닌 보통 환경에서 키워야지 싶긴 한데, 그 보통 환경이라는 게 뭔지가 또 상당히 어렵다.
p197
보통으로 산다는 걸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시시하게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보통으로 살아 본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는 게 이 보통으로 산다는 게 여간만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려워서 그런지 보통으로 사는 사람이 아주 부자나 아주 가난한 사람보다 수적으로도 적은 것 같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마땅히 보통으로 사는 사람이 제일 많아야 할 텐데 그렇지를 못하다.
또 외형적으로 보통 사는 것으로 보이되 의식은 부자 지향적인 수가 많다. 그래서 뱁새가 황새 쫓는 식으로 끊임없이 부자의 상태를 흉내 냄으로써 자기 생활을 파탄과 불안으로 몰고 간다. 속으론 혹시 가난해지면 어쩌나 불안한 채 겉으로 호기 있게 부자의 흉내를 내면서 산다. 일종의 분열 상태다. 보통 살면서도 보통 사는 데 대한 긍지나 줏대가 없다. 이건 진정한 의미로 보통 사는 게 아니다. 정말로 떳떳하게 보통 사는 사람은 드물고, 따라서 보통 살기가 외롭다. 보통 사는 사람이 많아야 의사소통이 잘 되는 건강한 사횔 텐데 말이다.
결국 아래위를 함께 이해할 수 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층이 바로 이 보통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돈이 귀하다는 것도 알 만큼은 알지만 세상에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믿음과는 바꿀 수 없고, 돈을 자기를 위해서는 아낄 줄도, 남을 위해선 쓸 줄도 알고, 자기 일, 자기 집안일과는 직접적으로 관계는 없더라도 크게는 관계되는 사람들과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 돌아가는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의 그른 일, 꼬인 일, 돼먹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어, 그런 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야 하는 양식의 소유자도 바로 이 보통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p215
그러고 나서 뛰어든 사회생활에서 범인이 설마 처음부터 범행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려 해도 일자리가 없었든지, 변변히 배운 것도 없겠다, 아무리 죽도록 일해 봤댔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든지 했을 건 뻔한 일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엔 욕망과 향락을 부채질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다.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해 봤댔자 일한 만큼 잘살 수는 절대로 없고 그렇다고 빈궁한 생활에서나마 정직과 근면에 긍지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정직과 근면이라는 것에 대한 가치 기준이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정직과 근면은 사람을 웃길 따름인 것이다. 다만 돈이 제일인 것이다. 돈이면 다인 것이다. 법을 어기되 법에 걸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약게 돈만 벌면 되는 것이다.
p259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라도 토해 내고 싶었다. 그러나 무슨 재주로 사람이 집어먹은 세월을 다시 토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결코 세월을 토해 낼 수는 없으리란 걸, 다만 잊을 수 있을 뿐이란 걸 안다. 내 눈가에 나이테를 하나 남기고 올해는 갈 테고, 올해의 괴로움은 잊혀질 것이다.
p267
그렇다면 80년을 산 긴긴 사연은 뇌의 어느 깊은 주름살 속에 영영 사장되고 만 셈인가. 측은하고 서글프다.
내 남편을 낳아 길러주었고, 내 자식을 같이 사랑하고, 같이 병상을 보살피고, 같이 재롱에 웃던 분의 쓸쓸한 노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한 가닥 연민뿐이니 그것 또한 서글프다.
p286.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한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p287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p288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p290
쓰는 일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읽히는 것 또한 부끄럽다.
나는 내 소설을 읽었다는 분을 혹 만나면 부끄럽다 못해 그 사람이 싫어지기까지 한다.
...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p292
나는 내 마지막 몇 달을 철없고 앳된 시절의 감동과 사랑으로 장식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 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찬탄을 보내고 싶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 여기저기 허둥대며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아름다운 것을 봐 두려고 생각하면 그건 이미 탐욕이다. 탐욕은 추하다.
p293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窓)이 허락해 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 두고 싶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오는 사람으로서도 아니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도 아니고, 그냥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 태초의 남녀 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p293
내 이런 찬란한 시간이 과연 내 생애에서 허락될까. 허락된다면 그때는 언제쯤일까. 10년 후쯤이 될까, 20년 후쯤이 될까, 몇 년 후라도 좋으니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싶다. 가을과 함께 곱게 쇠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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