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7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김혜남
p14
어쩌다 한창일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 이런 고생을 하는가 안타깝다는 얼굴이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병이 이미 내 건강의 많은 부분을 앗아 갔고 앞으로 지적 능력까지 빼앗아 갈지 모르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해 버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p27
그래서 나는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 삶에는 늘 빈 구석이 많았고, 그 빈 구석을 채우는 재미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갈 것이다.
준비가 좀 덜 되어 있으면 어떤가.
가면서 채우면 되고
그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인 것을.
p31
그럼에도 배우자를 내 남편 혹은 내 아내로 만들어 가는 건 내 몫이다. 물론 선택한 길이 틀릴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낭떠러지에 도착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한 발짝도 떼지 않으면 영영 아무 데도 못 가게 된다.
그리고 내 경험상 틀린 길은 없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었고, 길을 잘못 들었다 싶어도 나중에 보면 그 길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배움으로써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상황에 있든 한 발짝을 내디딘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용기 내기를 참 잘했다는 것을.
p40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하는데 명령을 받으면 그 주도권을 남에게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이 명령을 내리고 통제를 가하면 그것을 자꾸만 벗어나고 싶어 한다. “봐, 나는 네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난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p56
건강한 어른은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으며,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내가 잘났다고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때론 승자가 되고 때론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복잡한 현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욕심을 적절히 조절하며 행복을 찾고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p59
그보다 더 커다란 축복은 나의 울음을 지켜봐 줄 누군가가 내 옆에 있는 것이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을 때, 이보다 더 초라할 수가 없을 때, 앞날에 아무런 희망이 없고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을 때, 갑자기 이 세상에 나 혼자 외톨이로 버려진 것만 같을 때,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의 손을 잡고 실컷 울고 나면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우리는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한번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얻는다. 나와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결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 힘으로 우린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p62
아무 힘이 없을 때 너무나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아이는 깊은 상처를 안고 마음속 깊숙이 숨어 버린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성장하기를 멈춰 버린다. 그렇지만 그 아이도 어떻게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과거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그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거나 극복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저 고통만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p67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쏟는 사랑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당신이 상대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사랑하는 일, 그리고 기다려 주는 일뿐이다.
p72
그러니 어느 순간 인간관계가 피곤한 노동처럼 느껴진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라. 아직도 당신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p76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생은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당신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각 말고,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하세요.”
p82
어쩌면 현대인들이 무분별하게 ‘상처’라고 말하는 일들이 그 자국일 수도 있다. 그러니 스쳐 지나가고 그냥 넘어갈 일까지 굳이 상처라고 말하며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와 상처가 아닌 것을 구분 짓는 것, 그것은 어쩌면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p98
예전 같으면 내가 옳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을 텐데 지금은 기다린다. ‘저 사람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구나. 언젠가 저 사람도 준비가 되면 받아들이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예전 같으면 내 한계도 모른 채 나 잘난 줄 알고 살았을 텐데 이제는 그 한계를 알기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실수도 쉽게 인정하게 되었다. “그건 내 실수다. 당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내가 너무 서둘러서 당신이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p120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고 싶다면 그를 내 생각대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어차피 그는 당신의 충고를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난 후 조심스레 당신의 의견을 말해 주어라. 그리고 결정은 그에게 맡겨라. 그가 설령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그것은 그의 몫일 뿐이다.
p125
비난에 화를 내는 것은 그 비난을 받을 만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주먹을 날리거나 상대에게 똑같이 화를 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p129
그래서 나는 당신도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내면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공부의 즐거움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그것이 춤이든, 음악이든, 운동이든, 무엇이든 좋다. 하고 싶어 하는 공부는 호기심의 영역을 점점 넓혀 주고 인생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그저 재미로 인문학 강좌를 듣거나 취미 활동에 열심인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얼굴이 꼭 청소년처럼 해맑지 않던가.
p130
죽을 때까지 알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게 인간이다. 또 즐기려고만 한다면 공부야말로 기력이 달리고 활동 반경이 좁아지는 노년에도 인생을 재미있고 보람차게 살 수 있는 비결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젊은 시절부터 갈고닦지 않으면 나이 들어 즐기기가 어렵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호기심을 발동시켜 공부의 세계를 탐험해 볼 일이다.
p138
삶은 경험이지 이론이 아니다. 삶에는 해석이 필요없다. 삶은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중략) 매 순간 삶이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는 머리로 궁리하고 있다. 그대는 삶에게 말한다. ‘기다려라. 내가 문을 열어 주겠다. 그러나 먼저 결정 내릴 시간을 달라.’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삶이 그냥 왔다가 간다. 그대는 살아 있지도 않고 죽어 있지도 않은 채 다만 고달프게 질질 끌려갈 뿐이다.”
p146
그래서 마흔은 슬프다. 왜냐하면 날마다 조금씩 젊은 시절의 나를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p174
꽃은 활짝 피고 나면 시들 일만 남게 되고, 달은 꽉 차게 되면 기울 일밖에 남지 않는다. 활짝 피기 전이나 꽉 차기 전에는 그래도 마음속에 기대와 동경이 있는 법이다. 친구나 가족의 관계도 모두 이와 같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만 확 트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p181
나는 사람을 믿는다. 사람을 믿으면 일단 내 마음이 편하다. 의심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러다 배신당하면 크게 상처받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몇 번 있기도 했다. 하지만 상처가 두려워 사람을 믿지 않으면 행복도 없어져 버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p.184
특히 자신보다 남을 더 신경 쓰느라 정작 자기 마음이 곪아 터진 것을 보지 못하고, 좋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솔직한 감정을 억누르며 혼자 상처받아 온 사람일수록 한계 설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끝까지 사람을 믿고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한계 설정인 것이다.
p186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년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든 성장엔 고통이 따른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머물고 있던 세계를 깨트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성장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성장통을 고통스럽게만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
p187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자부심은 기대와 성공의 비율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성공의 경험이 쌓일수록 자부심 또한 강화된다는 뜻이다. 또 자부심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그렇게 도전하면 할수록 성공의 확률 또한 올라간다. 성공이 성공을 부르는 연쇄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알을 깨고 나아가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배우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예전에는 몰랐던 나를 발견함으로써 또 다른 성장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
p188
선배들에게 모르니까 가르쳐 달라고 하면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웠단다. 그래서 무엇이든 혼자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일은 더디고 결과도 좋지 못했다고 했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나중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되었고,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무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p189
이처럼 충분히 그 상황을 헤쳐 나갈 능력이 있음에도 과거의 실패 때문에 지레 포기하는 것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실패의 경험은 점점 더 도전을 어렵게 하고 성취와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그런 상황일수록 작은 도전과 성취가 중요하다.
p191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고 싶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웬만한 일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얼마나 값진지를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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