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p.76
아영은 어른들에게 이런 문제가 너무 사소하고 별거 아닌일로 여겨진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이희수는 아영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p.150
"정확히는, 식물학자가 종자를 주면, 마을 사람들은 그걸 재배해서 마을을 유지해. 어떻게 이런 관계가 생겨난 건지는 잘 모르겠어. "
p.237
그렇게 매일을 쌓아가면 이곳도 지속될 것이라고, 우리의 도피처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p.239
나는 온실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그 온실은 신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야 도달한 결론은, 신전을 지킬 사람들이 흩어지면 그 신전도 의미를 잃는다는 것이다.
p.299
그러나 이 곳의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그저 내일을 믿었다.그들은 이 마을의 끝을 상상하지 않았다. 한 달 뒤의 창고 보수 일정을, 다음해 작물 재배 계획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
지수는 자신이 조금씩 사람들이 가진 어떤 활력에 물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년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만을 생각하는, 그러나 그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데에서 오는 매일의 활기에.
p.365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은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p.371
모스바나는 자연인 동시에 인공적인 것이지요. 모스바나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은 모두 자연에서 왔고, 그것은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 모스바나라는 총체가 되었으며, 다시 자연의 일부로 진입했습니다. 인간이 모스바나를 이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모스바나가 인간을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둘은 분리할 수 없고, 분리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분명한 건 모스바나는 인간에게 적응하는 전략으로 그 종의 번영을 추구했고, 인간은 모스바나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모스바나와 인간은 일종의 공진화를 이룬 셈입니다.
p.379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디 못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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