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독서

2023 완독4 시절 일기 - 김연수

huiyu 2023. 2. 12. 06:40

p.15
그냥 끄적이는게 좋았다. 쓸 게 있으면 그걸 쓰고, 쓸 게 없으면 책에서 찾은 인상 깊은 구절을 옮겨 적었다. 그렇게 자주 쓰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시를 쓰고 있었다. 시는 형편없었지만, 시를 쓰는 나는 근사했다. 눈에 띄는 것을 적느라 자주 길에 멈춰 서야만  했다. 알고 보니 시를 쓴다는 건 책의 문장을 베껴쓰는 일과 비슷했다. 그제야 나는 이 세계가 얼마나 정교한 곳인지 깨닫게 됐다. 나는 이 걸작의 세세한 부분을 제대로 베낄 수 없었다. 

p.17
요컨대 카프카에게 일기란 사전에 규정된 형식이 없는 글쓰기, 따라서 완벽하게 쓴다는 강박없이 쓸 수 있는 글쓰기였다. 사전에늘 일기를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라면 자신조차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써야 일기가 된다. 일기를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백년 뒤에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했다면 카프카도 이처럼 두꺼운 일기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카프카 역시 자신의 일기를 지우곤 했는데, 그건 일기의 목적이 쓰는 행위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p.18
'일기, 나를 찾아가는 첫 걸음'
이 책은 아무것이나, 심지어 쓸 게 없다는 사실마저도 일기의 소재로 삼을 것을 권한다. 일기란 잘 쓰는게 아니라 자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기를 쓸 때 정말 중요한 요소는 열정, 감각, 진실함, 연민, 호기심, 통찰, 창의성, 자발성, 예술적 기교, 기쁨이다. 맞춤법이나 문법, 단정한 글씨, 어순, 시간 순서, 완성도 따위는 일기 쓰기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읽는 사람이 없을 것. 마음대로 쓸 것. 이 두 가지 지침 덕분에 일기 쓰기는 창의적 글쓰기에 가까워진다. 한 번이라도 발표를 목적으로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한 글자도 쓰기가 싫어진다. 글쓰기가 괴로운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글쓰기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도 읽지 않을테니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써라. 대신 날마다 쓰고 적어도 이십분은 계속 써라. 다 쓰고 나면 찢어버려도 좋다.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이지, 남기는게 아니니까. 

p.30
'여든아홉 살이 된 나를 보면, 그동안 힘든 일도 많았고 못 해본 일도 많으니 후회하리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후회는 없어. 이제는 현재를 온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됐으니까' 

p.50
그게 소설이든 시든,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면, 그건 지금 그의 내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불은 결코 홀로 타오르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 불은 바깥 어디선가에서 그의 내면으로 번졌으리라. 하지만 그 불어 어디서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은 어디에서든 옮겨 붙을 수 있으니까. 불은 바로 옆에 앉은 사람에게서도, 수천년 전에 죽은 사람에게서도 전해질 수 있다.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와 수천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그 불은 원래의 열기를 고스란히 보존한 채 순식간에 번져간다. 그게 불의 속성이다. 

p53.
"우리 모두는 우리가 꿈꾸는 완벽함에 필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가능한 것을 얼마나 멋지게 실패하는가를 기초로 우리들을 평가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만일 제 모든 작품을 제가 다시 쓸 수만 있다면,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윌리엄 포크너 

"저는 모든 것을 후회해요. 삶의 모든 분야에서 수없이 먛은 시 

p112.
물속에 빠진 사람이 공기를 원하는 것처럼, 사랑을 잃고난 뒤에야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젊음을 닮아 있다. 더이상 젊은이가 아닐 때, 우리는 비로소 젊음이 무엇인지 알게된다. 그래서 젊음은 젊음을 모른다. 사랑도 그렇다. 무지할때에만 우리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p.143
그제야 나는 거울은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울 속에 늙은 얼굴이 있다고 해서 그 거울이 그를 늙게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세계는 그 거울과 같다. 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 나빠지는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p.153
이 인생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배웠어야 하는 것은 '나'의 올바른 사용법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모르니 인생은 예측불허,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이런 형편인데도 불운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게 다 '나'의 사용법을 몰라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우 많지 않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다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156
본격적으로 뭔가를 배우다보면, 지금까지 제 몸을 제대로 움직이는 법을 모르면서 옳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p.156
골프 선수는 골프를 포함한 모든 활동에서 자신의 신체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항상 어떠한 감각 경험을 동반하는데, 습관적 사용이 평생 쌓였기 때문에 그는 이 경험에 익숙하다. 더 나아가, 그 익숙함으로 인해 감각 경험은 '옳게 느껴지며', 그래서 그는 그 경험을 반복하는데 상당한 만족을 느낀다. 그러므로 공을 잘 치려고 할때 골프채를 휘두르며 공에서 눈을 떼는 것은 물론 다른 잘못된 습관적 사용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용을 불러오는 감각 경험이 익숙 '옳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잘못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습관이 되어 자신에게 익숙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뜻한다. 피아노 연주에 빗다자면, 손가락 사용법을 모를 뿐 아니라 잘못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은 옳다고 느끼며 계속 연습하는 일이 그렇다. 이런건 선생이 교정해주기 전까지 고칠 수가 없다. 고집스런 둔재의 불행, 어쩌면 인간 모두의 불행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할 것이다. 깨어 있는 시간 전부를 피아노 연주에 쏟아부어도 실력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해답은 자신이 옳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일. 즉 습관적인 행동억서 벗어나고, 익숙하지 않은 방법을 찾아보고, 나만은 옳게 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여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p.158
목적 지향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과정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근사한 콘서트장에서 완벽하게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 말고 오늘 연습하는 부분의 손가락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p.191
세속적인 일에는 아무 미련이 없으나 그날그날 하늘을 보면서 느꼈던 감명 깊었던 순간들만은 마음에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감동은 바로 거기, 고개만 들면 보이는 그날그날의 하늘에 있었던 것이다. 

p.208
삶에는 '빨리 감기'나 '되감기'가 없기에 앞날을 전혀 예견할 수 없다 그러니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p.211
지금 불타는 집에 앉아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 불에 맞서지도 말고, 그 불에 동조하지도 마라. 그 불을 바라보라. 

p.220
눈이란 그 밝음을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오늘 요술 구경하는데도 요술쟁이가 눈속임을 한 것이 아니라 실은 구경꾼들이 스스로 속은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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