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각

기억

huiyu 2023. 8. 30. 01:58

엄마에겐 두 명의 엄마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한텐 두 명의 외할머니가 있는건데 한 분은 엄마의 친엄마이고 또 다른 한 분은,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새로 외할아버지와 결혼하신 분이다. 엄마가 20살 이후에 결혼 하신 것 같다. 물론 내 기억 속 외할머니는 새 외할머니 뿐이긴 하다. 엄마와는 그리 친해보이는 관계는 아니였던 것 같은데 모든 할머니들이 그렇듯이 우리들은 아끼고 잘 챙겨주셨었다.
엄마의 친 엄마는 엄마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백혈병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 시기 엄마는 한참동안 대전의 큰 병원에서 외할머니를 간호했었다고 한다.  얼마나 긴 기간 간호했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엄마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그러고보니 왜인지 엄마의 친엄마인 외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떤 분이셨을까? 글을 쓰다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이젠 엄마의 '기억'속에만 남아있는 할머니의 얘길 들어봐야겠다. 그리고 나도 엄마의 기억을 나누고 싶다.

새 외할머니는 좋으신 분이었다. '뭐 우리에겐.' 왜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와는 종종 다투었다. 전화로도 싸우고, 싸운 후 우셨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아마도 돈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20살 때 돌아가셨으니 내 '기억'에도 온전히 남아있다. 나에게도 이제는 그리움이다. 시골집의 정겨움, 할머니의 따듯한 품, 한 상 가득 차려주신 반찬과 밥. 이젠 사진으로밖에 추억할 수 없는 기억이다.

대학시절 어느 날, 외할머니가 위독하다고 연락이 왔다. 가깝기도 하고 안 갈 수 없었다. 마지막 자리였던 것 같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아프신데 날 알아보시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 날 바로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우리를 기다리신거 같다고 했다.
장례식 기간 엄마는 덤덤한 듯 보였다. 작은 이모는 펑펑 울고 계셨는데 엄마는 왜인지 더 침착해보였다. 사이가 안좋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모습이 더 엄마한텐 맞아보인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을 보내고 마지막 발인 날. 내내 침착해보였던 엄마도 엉엉 울기 시작하셨다.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도 우네, 지금 어떤 기분일까?'.
엄마에게 외할머니는 어떤분이셨을까, 20살 이후 새로 엄마가 되신 분, '엄마'가 아닌 언제나 '오마니'라고 부르신 분. 그럼에도 30년동안 '어머니'였던 사람. 미운 정이 더 많았을 거 같은데 그당시 어떤 감정에 쌓였던 걸까. 아직도 나는 어떤 감정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슬펐을 거라는 걸 짐작할 뿐이다.


가족들이 모이면 결국 이야기는 지난 추억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을 넘어 부모님의 젊은 시절, 그리고 부모님의 더 어린 시절. 나는 갖고 있지 않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 지금은 안계신 분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누는 시간. 그리고 언젠가 다시, 같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지금의 새로운 시간.

그러고보면 참 슬픈 일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내 과거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을 것 같다.
항상 그대로 거기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나이들어 가고 있다는 것.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와서 곧 사라져버릴 누군가의 기억.
사라지지 않게 내가 기억해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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